어머이건 필수야! 마잘뛰고 2020년! 징강산 ㅋㅋㅋㅋ르코 폴로 Tip 대방출

2020. 10. 22. 00:41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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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는 평균 해발고도 1,000m입니다.
후난성[湖南省]과의 경계 부근에 있으며, 높은 곳은 해발고도 1,500∼1,800m입니다.
장시성[江西省] 서부, 후난성[湖南省] 동부 및 뤄자오산맥[羅宵山脈]의 완양산[萬洋山] 북단에 위치합니다.
정상에는 험한 암봉으로 둘러싸인 작은 대지(臺地)가 있고, 다징[大井]·중징[中井] 등 10여 개의 촌락이 있습니다.
천연의 요새를 이루며, 마오쩌둥[毛澤東]이 군사거점으로 삼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1927년에 마오쩌둥이 이곳에다 중국 제1 농촌혁명근거지를 창건하고, 1928년 4월에 사령관 주더[朱德]와 마오쩌둥의 부대가 이곳에서 합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황양제[黃洋界], 솽마스[雙馬石], 퉁무링[桐木嶺], 주쓰충[朱砂沖] 등 험한 암봉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 분지에는 농림 광산자원이 풍부합니다.
우룽탄폭포[五龍潭瀑布]에는 5개의 담소와 18개의 폭포가 있으며, 샤오징룽탄[小井龍潭], 츠핑난산[茨坪南山], 리핑페이룽둥[黎坪飛龍洞], 우지산[五指山], 징강산혁명박물관, 징강산회사(會師:부대가 합류함)기념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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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t-align: center;"> 중세 이탈리아의 동방 여행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 가문 출신인 마르코 폴로는 부친 니콜로 폴로와 숙부 마테오 폴로(‘폴로’는 ‘까마귀’라는 타르마치어에서 유래)를 따라 1271년 여름 17세 때 고향 베네치아를 떠났다.
그들은 약 4년간의 동행(東行) 끝에 1275년 5월 원(元)제국의 상도(上都)에 도착해 칸의 배려 속에 16년간 중국에 체류합니다가 1291년 귀향하였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은 그가 중국에 머무른 16년, 육 · 해로를 통한 왕복 여정 8년을 합쳐 총 24년의 긴 여정이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 노정과 행적은 다음과 같다.
1271년 봄 베네치아 출발 → 아크레(Acre, 현 이스라엘 서북 해안, 하이파 북쪽) → 라이아스(Laias, 소아시아 반도 동남 해안) →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 알현)→라이아스 → 세바스타(Sevasta, 현 터키의 시바스(Sivas)) → 일 칸국 수도 타브리즈(Tabriz) → 페르시아만 오르무스(Ormus, 현 호르무즈(Hormuz)) → 케르만(Kerman, 현 이란의 케르만샤(Kermansha)) → 호라산(Khorasan) 지방의 네이샤부르(Neyshabur) → 발흐(Balkh, 현 아프가니스탄 북부) → 발라샨(Balashan, 현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의 와칸(Wakhan)) → 파미르 고원 → 카슈가르(Kashgar, 현 신장위구르 카스(喀什)) → 야르칸(Yarcan, 현 신장 사차(莎車)) → 호탄(Khotan, 현 신장 허톈(和田)) → 펨(Pem, 현 신장 위톈(于田), 호탄 동쪽 100마일) → 차르찬(Charchan, 현 신장 키에모(且末) 일대) → 로프(Lop, 현 신장 뤄창(若羌) 일대) → 탕구트(Tangut) 지역(옛 서하(西夏) 지역, 현 닝샤(寧夏)와 간쑤성(甘肅城) 일부 지역 포함) → 사주(沙州, 현 간쑤성 둔황(敦煌) 서부) → 숙주(肅州, Suchu, 현 간쑤성 주취안(酒泉)) → 간저우(甘州, Canpchu, 현 간쑤성 장예(張掖)) → 량저우(凉州, Erginul, 현 간쑤성 우웨이(武威)) → 닝샤(寧夏, Egrigaia, 옛 서하의 수도, 현 인촨(銀川)) → 천덕(天德, Tenduc, 현 네이멍구 후얼호트 동쪽 바이타구(白塔), 옹구트족의 중심) → 선덕주(宣德州, Sindachu, 현 허베이(河北) 선화(宣化) 일대) → 찰한뇌이(察罕腦爾, Chagannor, 현 허베이 구위안(沽源) 북부) → 상도(上都, Chandu, 개평부(開平府), 현 네이멍구 둬룬(多倫) 서북부) 도착.
상도에서 쿠빌라이를 알현한 후 마르코 폴로 일행은 대도(大都, 현 베이징)로 이주하였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자술에 의하면 그는 총명하고 신중한 사람으로서 페르시아어를 알고, 중국어와 몽골어, 그리고 말타기와 활쏘기에도 능숙하였습니다.
쿠빌라이의 총애를 받아 여러 차례 원조(元朝)의 특사로 각지에 파견되었다.
또한 그는 칸의 명을 받고 3년간 양저우(揚州)를 다스렸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증빙자료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에 관해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는 염세(鹽稅) 관련 역원(役員)으로 양저우에서 3년간 근무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20세부터 36세까지 청년기와 장년기의 초기를 중국에서 보냈는데, 이 기간에 그는 칸의 명에 따라 중국 서남행과 동남행을 단행하였습니다.
우선 마르코 폴로의 서남행(약 반년간) 노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캄발루크(Cambaluc, 대도(大都), Taidu) → 영정하(永定河) 도하 → 탁주(涿州, Tonju, 현 허베이 줘셴(涿縣)) → 태원부(太原府, Taiuanfu) → 평양부(平陽府, Pianfu, 현 산시(山西), 린펀(臨分)) → 태진(太津, Thaigin, 혹은 산시 서남부의 허진(河津)) → 황허 도하 → 개창부(開昌府, Cachanfu, 현 산시(陝西) 퉁저우(同州)) → 경조부(京兆府, Kenjanfu, 현 시안(西安)) → 관중(關中, Cuncun) 지구 → 아극팔리만자(阿克八里蠻子, Acbaluc Manji, 한중부(漢中府)) → 성도부(成都府, Sindufu) → 토번(吐蕃, 티베트(Tibet)) → 건도(建都, Caindu, 현 쓰촨(四川), 시창(西昌) 일대) → 금사강(金沙江) 도하 → 합랄장성(哈剌章省, Carajan, 현 윈난성 (雲南省))의 압적(押赤, Yachi, 현 윈난 쿤밍(昆明)) → 합랄장성(哈剌章城, 현 윈난 다리(大理)) → 찰이단단(札爾丹丹, Zardandan, 현 금치부(金齒府)의 융창(永昌)) → 면국(緬國, Mien, 현 미얀마)의 면국성(緬國城, 현 미얀마의 파간(Pagan)) → 아니(阿泥, Aniu, 현 윈난 위안장강(元江) 동남부) → 독랄만(禿剌蠻, Toloman, 현 윈난 자오퉁(昭通)부터 쓰촨 쥔롄(筠連)까지 일대) → 성도(成都) → 탁주(涿州) 도착.
다음으로, 마르코 폴로의 동남행 노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탁주 → 해진부(海津府, Cachanfu, 현 톈진(天津) 일대) → 창저우(滄州, Changlu, 현 허베이) → 경주(景州, Changli, 현 허베이 징현(景縣) 일대) → 태정부(泰定府, Tandinfu, 현 지난(濟南)) → 청주마두(淸州碼頭, Sinjumata, 현 린칭(臨淸)) → 임성(任城, Linjin, 현 산둥(山東) 지닝(濟寧)) → 비주(邳州, Pinju, 현 장쑤(江蘇) 비현(邳縣) 남부) → 초주(楚州, Chinju, 현 장쑤 화이안(淮安)) 경계 → Caramoran강(현 황허) 남안의 회안주(淮安州, Coiganju) → 보응(寶應, Paukin) → 고우(高郵, Cauin) → 태주(泰州, Tinju) → 양저우(揚州, Yanju) → 진주(眞州, Sinju, 현 장쑤 이정(儀征)) → 과주(瓜州, Caiju) → 진강부(鎭江府, Chinghianfu) → 상주(常州, Canju) → 쑤저우(蘇州, Suju) → 오강주(吳江州, Vuju) → 오정(烏程, Vughin, 현 저장(浙江) 우싱(吳興)) → 항저우성(杭州城) → 동려(桐廬, Tanpiuju, 현 저장) → 무주(婺州 Vuju, 현 저장 진화(金華)) → 구주(衢州, Ghiuju, 현 저장 취셴(衢縣)) → 상산(常山, Chan Shan) → 신주(信州, Cuju, 현 장시(江西) 상라오(上饒)) → 푸젠(福建, Choncha) 지구의 건녕부(建寧府, Kenlinfu) → 후관(侯官, Unken, 일설은 우계(尤溪)) → 푸저우(福州, Fuju) → 자동성(刺桐城, Zaituen, 현 취안저우(泉州)) → 정저우(汀州, Tiunju, 일설은 창저우(漳州)나 더화(德化)).
마르코 폴로는 이상의 두 차례에 걸친 여행에서 수십개의 도성을 직접 답사해 그가 직접 견문한 것을 여행기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부분이 사실에 의거하였지만 일부는 전해들은 것을 기록해 잘못 혹은 과장된 것도 있습니다.
타향에서 2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낸 마르코 폴로와 그의 부친, 숙부는 고향을 그리워하여 몇번 원조(元朝)에 귀국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거절당합니다가 당시 원조와 친속(親屬) 관계에 있는 일 칸국의 칸 아르군(Arghun)의 비(妃) 볼가나(Bolgana)의 사망으로 귀국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아르군은 중신(重臣) 올라타이(Oulatai) · 아푸스카(Apousca) · 코자(Coja) 등 3명의 특사를 원조에 파견해 청혼했는데, 쿠빌라이는 이 청혼을 흔쾌히 승낙하고 코카친(Kokachin) 공주를 출가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오아시스 육로로 서행하던 3명의 특사와 공주는 타타르족 간의 내란이 발생해 길이 차단되자 8개월 만에 되돌아왔다.
이들은 해로를 이용하기로 하고, 해로의 사정에 밝은 폴로 일행을 동행하게 해줄 것을 칸에게 제의하였습니다.
칸은 귀향을 갈망하는 폴로 일행에게 해로를 통해 공주를 호송하여 귀국하게 했습니다.
폴로 일행은 1291년 1월경에 취안저우(泉州)를 출항해 귀로에 올랐다.
폴로 일행의 귀로 노정은 다음과 같다.
취안저우 출발 → 해남도(海南島, Keinan) → 참파(Champa, 즉 점파(占婆), 현 베트남 중부) → 이도(二島), 콘두르(Condur, 현 베트남 동남 해안의 Condore도)와 손두르(Sondur, Condur도 서면의 형제도(兄弟島, Two Brothers)) → 로칵(Locac, 현 타이 남부의 로푸리(Lophury) 일대) → 펜탄(Pentan, 현 싱가포르 해협 남면의 한 섬이거나 인도네시아의 빈탄(Bintan)도) → 소(小)자바(Little Java, 현 수마트라) → 네쿠베란(Necuveran, 현 인도의 니코바르(Nicobar)도)와 안가만(Angaman, 현 인도의 안다만(Andaman)제도) → 세일란(Seilan, 현 스리랑카) → 인도 동남부의 마아바르(Maabar, 현 마나르(Mannar)만 연안 일대) → 카일(Cail, 현 인도 동남단의 푸니 카얄(Punnei Kayal)) → 코일룸(Coilum, 현 인도 서남 해안의 퀼론(Quilon)) → 멜리바르(Melibar, 현 인도 말라바르(Malabar) 해안의 중심 지역인 망갈로르(Mangalore) 일대) → 고주라트(Gozurat, 현 인도 서북 해안의 Gugerat 일대)의 타나(Tana, 현 봄베이(Bomby) 북쪽) · 캄바에트(Cambaet, 현 캄베이(Cambay)만 일대) · 세메나트(Semenat, 현 솜나트(Somnath)) → 케스마코란(Kesmacoran, 현 파키스탄의 카라치(Karachi)로부터 이란의 마크란(Makran) 해안 일대까지) → 오르무스(Ormus, 현 페르시아만 입구의 호르무즈(Hormuz)) → 케르마(Kerma) → 야스디(Yasdi, 현 야즈드(Yazd)) → 이스파한(Isfaan, 현 이스파한(Isfahan)) → 카스빈(Casvin, 현 카즈빈(Kazvin)) → 일 칸국 수도 타우리스(Tauris, 현 타브리즈(Tabriz)) → 그루지안(Georgian 지역, 현 그루지야(Georgia)) → 파이푸르트(Paipurth, 현 터키의 바이부르트(Bayburt)) → 흑해 동남 해안의 트레비존드(Trebizond, 현 트라브존(Trabzon)) → 콘스탄티노플 → (해로, 1295) 베네치아 귀향.
마르코 폴로가 귀향한 다음해인 1296년에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이른바 ‘코르출라 해전’이 발발하였습니다.
이 전투에 참전한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군이 패전하면서 포로가 되었다.
그가 감옥에서 동방 여행담을 구술한 것을 같이 수감되었던 이야기 작가 루스티치아노(Rusticiano)가 대필하였는데, 그것이 1298년에 책으로 엮여 나왔다.
그러자 일시에 마르코 폴로의 명성이 높아졌으며, 그해 여름 그는 석방되었다.
이 여행기의 원고는 본래 중세 프랑스 · 이탈리어 혼성어, 즉 프랑코-이탈리아어(Franco-Italian)로 씌어졌으며, 적잖은 방언도 곳곳에 등장하였습니다.
후에 필사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라틴어와 이탈리아어의 여러 방언, 그리고 기타 유럽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원본은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지만, 유행된 필사본은 약 140종에 달합니다.
그중 스페인 톨레도 교회 도서관에 소장된 젤라다(Zelada) 라틴어 필사본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의 B.
N.
fr.
1116 필사본이 원문에 가장 가까우며, 1477년 뉘른베르크에서 출간된 독일어 역본은 최초의 간본(刊本)입니다.
1970년대 말까지 출판된 각종 언어의 간본은 120여종이나 되며, 이러한 간본의 서명(書名)도 일정하지 않고 다양합니다.
『세계의 기술』(Description of the World), 『베네치아인 마르코 폴로 각하의 동방 각국 기사(奇事)에 관한 서(書)』 『베네치아 시민(市民) 마르코 폴로의 생활』 『기서(奇書)』 『백만(百萬)』 등 여러가지 서명이 있으나, 보통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라고 합니다.
중국어로는 『마가파라행기(馬可波羅行記)』로, 일본어와 한국어로는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란 제목으로 번역 · 출간되었다.
이 여행기의 내용은 서문과 본문의 두 부문으로 대별되는데, 본문은 4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에는 마르코 폴로 일행 3명의 2차에 걸친 동방 여행 과정, 본문의 제1부는 마르코 폴로 일행이 소아르메니아로부터 원조의 상도(上都)까지 오는 과정, 제2부는 몽골 대한(大汗, 대칸)과 도성(都城) · 궁전 · 치적을 비롯해 마르코 폴로가 겪은 중국 각지 여행담, 제3부는 일본과 남해 여러 나라, 인도와 인도양 제도, 폴로 일행의 귀로 여정, 제4부는 몽골 여러 부족간의 전쟁과 아시아 북부 지역의 개황을 각각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대략 200여 개국과 지역 · 도시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주요한 지방에 관해서는 그곳의 기후 · 물산 · 상업 · 문화 · 종교 · 풍속 · 정치사건 등을 상술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유럽에서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여행기의 사실성을 의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단사설(異端邪說)’이라고 하면서 그 ‘허위성’을 자백하라는 압력까지 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성이 입증되었으며, 중세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중국을 이해하는 주요한 전거와 안내서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1375년에 제작된 ‘카탈란(Catalan) 대지도’를 비롯한 중세 유럽의 세계지도, 특히 아시아 지도는 모두가 이 여행기를 참고하거나 근거로 하여 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여행기는 15세기 이후 전개된 콜럼버스(C.
Columbus, 1451~1506)와 다 가마(V.
da Gama, 1469~1524) 등 유럽의 항해자들의 탐험 활동을 고무하는

마르코폴로

 

마리아쥬 프레르 마르코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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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폴로 가방

 

마르코폴로 홍차